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디 머리 (문단 편집) === 2012년 === 연초 호주오픈에서 [[케이 니시코리]]를 꺾으며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나 [[노박 조코비치]]에게 패배하여 4강에 그쳤다. 이후 두바이 오픈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준우승, 마이애미 마스터스에선 다시 [[노박 조코비치]]를 만나 준우승했다. 7월 8월 [[윔블던]] 남자 단식 4강전에서 프랑스의 송가를 꺾고 1년만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황제 로저 페더러. 첫 세트는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며 따냈으나, 2세트를 내준 후 급격하게 무너지며 세트 스코어 1-3으로 패배. 이로서 개인 최대 커리어는 '''준우승 4회'''. 경기 후 인터뷰하는데 머리도 울고 윔블던을 가득 채운 영국 관중도 울었다... '''허나...''' [[파일:external/i1.dailyrecord.co.uk/Andy%20Murray?.jpg|width=600]] '''[[2012 런던 올림픽|2012년 런던 올림픽]] 테니스 남자 싱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것도 한 달 전 윔블던 우승 타이틀을 빼앗았던 '''로저 페더러'''를 꺾었으니 이 얼마나 짜릿한 복수였을까. 이것으로 [[1908 런던 올림픽|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의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이후 무려 '''104년 만에 금메달 획득''', 여담으로 그 금메달과 혼합 복식에서의 은메달을 개목걸이로(...) 쓰고 있다고 한다.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51449/|#]] 페더러는 4강전에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와 풀세트에 모자라 롱게임을 치르고 올라왔기 때문에 30대에 접어든 페더러로써는 승산이 거의 없었고 골든 슬램은 결국 실패했다. 후에 델 포트로는 머리의 첫 윔블던 우승을 돕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또한 4년후 올림픽에서도 조코비치를 탈락시키고 결승에서 머리에게 금메달을 갖다 바쳤다. 게다가 올림픽 후 곧 열린 '''2012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비원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조코비치에게 2세트를 선취하고는 2세트를 연달아 내줘 다시 좌절하나 싶었으나 5세트에서 조코비치의 서브게임을 잇달아 브레이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최종결과 3-2(7-6<12-10>, 7-5, 2-6, 3-6, 6-2). 그리고 머리는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으로 세계 랭킹 3위에 처음으로 올라섰다. 테니스 전문가들은 머리가 2012년에 부활한 결정적인 계기가 새롭게 영입한 코치인 『[[이반 렌들]](Ivan Lendl)』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가 머리의 테니스 기술이나 약점으로 꼽히던 정신적인 부분을 많이 잡아주어 단점을 극복했다는 것.[* 참고로 렌들 코치는 1980~90년대 남자 테니스계에서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던 전설적인 플레이어다. 프로전향 초기엔 매번 메이저 대회에서 준우승만 차지하여 줄곧 콩라인이었지만, 1989~90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1984,1986~87년 롤랑 가로스(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1985,1986~87년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거머쥐며 유명해졌다.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는 86~87년 준우승이 최고성적으로 아쉽게도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실패) 이 외에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 5회(81,82,85 86,87) & 준우승 4회(80,83,84,88),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 진출 19회, 통산 270주(5년이 넘는 기간) 세계 랭킹 1위 유지, 통산 타이틀 획득 94회, 개인전 통산 1071승의 대기록을 세워 2001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하였다.] 2014년엔 렌들과 헤어지고 프랑스 출신의 [[아멜리 모레스모]]를 코치로 선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